주얼리로 유명한 까르띠에의 탱크 머스트는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특히 기계식 무브먼트를 중시하는 이들에는 더욱 비판적인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네모난 시계를 떠올린다면, 열에 아홉은 가장 먼저 떠올릴 만큼 아이코닉한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를 제작한 브랜드 까르띠에에서 출시한 대체 불가능한 디자인과 수많은 셀럽들이 사랑했던 시계, 까르띠에 탱크 머스트입니다.
까르띠에 탱크는 1917년 루이 까르띠에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등장한 영국의 탱크 전차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시계입니다. 당시 루이 까르띠에는 탱크 전차의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아, 이 직선적이고 구조적인 형태를 손목시계로 표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탱크의 강력하고 인상적인 이미지가 담긴 직사각형 케이스와 직선적인 라인은 탱크 시계의 형태뿐 아니라 이름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탱크의 디자인은 간결한 직사각형 케이스와 깔끔하게 뻗은 직선 라인, 로마 숫자로 구성된 미니멀한 다이얼로 대표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탱크 전차의 강렬한 형태와 구조적 특징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습니다. 특히 탱크만의 독특한 케이스 디자인과 블루 핸즈는 까르띠에 탱크 시계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시대를 초월한 우아함과 세련된 미학을 표현합니다.
1940년대에 접어들어, 제2차 세계대전과 창업자 가문의 주요 인물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까르띠에는 긴 침체기를 겪게 됩니다. 창업자 가족이 경영에서 물러나고, 브랜드가 단기 이익에 집중하면서 라이선스 계약을 남발하는 등 이미지가 다소 흐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리치몬드 그룹에 소속된 이후 1977년, 까르띠에는 대중적인 전략을 내세운 '머스트 드 탱크(Must de Tank)'를 출시했습니다. 기존의 귀금속 소재 대신 은에 금 도금을 하고, 범용 ETA 무브먼트를 사용하여 가격을 낮추었습니다. 이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두어 약 30년간 꾸준히 판매되며 탱크 라인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생산 기간도 길었고 물량도 많았던 만큼 기본형 외에 트리니티, 레몬색 다이얼, 아르데코, 랙커 다이얼 등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며 특히 이 시대의 다양한 모델들은 빈티지 컬렉터들 사이에서 여전히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 머스트 드 탱크가 단종된 이후 2005년부터 탱크 솔로가 까르띠에의 주력 라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탱크 솔로는 이전 머스트 드 탱크보다 케이스와 좌우 브롱카가 평평하고 각진 형태로 바뀌었고, 로고 역시 'Must de Cartier'에서 'CARTIER'로 단순화되었습니다. 소재 역시 버메일(Vermeil)이 아닌 스틸 소재로 변경되었습니다.
2021년, 탱크 솔로는 다시금 탱크 머스트로 교체되었습니다. 새롭게 출시된 탱크 머스트는 1977년의 머스트 드 탱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로, 탱크 솔로의 각진 디자인 대신 부드럽고 볼륨감 있는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다만, 소재는 스틸을 유지하여 빈티지 모델과의 차이를 두었습니다. 그 외에도 카보숑이 조금 더 뾰족해지고, 디버클에서 핀버클로의 변화, 소폭 축소된 크기 등 세부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까르띠에 탱크는 셀럽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아 온 시계입니다. 흔히 여성들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대중적 이미지와는 달리,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나는 시간을 확인하려고 탱크 시계를 차는 것이 아니다. 사실 태엽을 감지도 않는다. 그저 탱크가 차야 할 시계이기에 착용하는 것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길 만큼 탱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습니다. 또한 전설적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링에 오르기 직전 시계를 벗어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탱크를 착용하고 워밍업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까르띠에 탱크는 성별과 분야를 초월하여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들이 사랑한, 진정한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25년 현재 까르띠에 탱크 머스트의 스몰 사이즈 기준 리테일 가격은 499만원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까르띠에는 공격적인 가격 인상 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라지 사이즈 모델은 이미 500만원을 넘는 가격대에 진입했습니다. 2024년부터는 탱크 머스트를 일반 매장에서는 구입할 수 없고, 온라인 또는 청담 매장에서만 구매 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세컨핸즈 기능조차 없는 쿼츠 모델에 500만원 이상의 금액을 지불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탱크만의 독보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디자인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거라고 생각됩니다.